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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대들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을 억지로 없애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자유로운 마음 기틀을 걸림 없이 운용하되 중도에만 어그러지지 않게 하라고 하며, 가벼운 재주와 작은 욕심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그 재주와 발심의 크지 못함을 걱정하라 하노니, 그러므로 나의 가르치는 법은 오직 작은 것을 크게 할 뿐이며, 배우는 사람도 작은 데에 들이던 그 공력을 다시 큰 데로 돌리라는 것이니, 이것이 곧 큰 것을 성취하는 대법이니라.](대종경 수행품 37장)

많은 사람들이 화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분별을 하고 있으며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면서 대부분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분노하는 것은 나쁘므로 어떻게 하면 화를 내지 않게 하는가를 고심하고 있다. 그래서 반드시 이를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무조건 멈추고 참는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나 학생들이 발표하는 마음공부일기를 보면 대부분 일어나는 마음을 참는 공부를 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가 겉으로는 해결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마음이 깨어나는 일을 어렵게 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참는 공부를 유무념으로 오랫동안 많이 하면 어느 듯 자기감정을 잃어버리고 화를 낼 줄 모르며 감정이 없는 불행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서 마음의 깊은 곳에는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서 이것이 여기 저기 몸을 상하게 한다. 이 분노가 밖으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필요 없는 긴장을 많이 한다. 정신을 많이 쓰게 되어 늘 피곤하며 두려움이 많아지고 활기찬 삶을 살수가 없게 된다.

공부한다고 하면서 자기감정을 속이게 되고 겉과 속이 다른 근엄한 모습을 지니며 답답한 삶을 산다. 결국 쌓인 분노로 어두운 무명심이 생기고 마음의 자유를 잃게 되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깨어나야 한다.

대종사님은 대종경 수행품에서 희(喜) 노(怒) 애(哀) 락(樂)을 걸림 없이 운용하라고 하시고, 이것이 큰 도를 성취하는 대법이라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분별하여서 <희>는 좋아하고 <노>는 싫어하며 <애>은 싫어하고 <락>은 좋아하였다.

이러한 분별주착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여실히 살펴야 한다. 나에게 일어나는 마음들을 분별없이 잘 살펴보면 일어나는 모든 마음이 소중하며 나를 깨어나게 하고  모두가 나에게 필요한 것임을 발견한다.

일어나는 마음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며 모두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뿐이다. 기쁜 마음도 좋은 것이며 분노도 아름답고 거룩한 것이다. 슬픔도 소중하며 즐거움도 좋은 것이다. 대종사님은 이들 마음을 억지로 없애지 말고 수용하여 걸림 없이 운용하라 하셨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우리가 기쁠 때 기뻐하고 분노할 때는 분노하고 슬플 때 슬퍼하고 즐거울 때 즐기는 것이 깨어있는 삶이고 살아있는 사람의 건강한 모습이다. 일어나는 마음이 어떤 것이라 하여도 반갑게 수용하고 이를 소중히 하며 천천히 느껴보자. 그러면 내 마음이 살아나고 편안해 질 것이다.

분노를 싫어하고 참으면 그 분노가 마음속에 쌓여서 늘 화가 나 있게 된다. 내 이성으로 단속할 힘을 잃어버릴 때는 이것이 밖으로 튀어 나온다. 그러므로 늘 경계해야 하고 긴장해 있어야 하며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마음에 분노가 쌓인 사람은 필요 없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되어 이것 때문에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 분노를 쌓아두면 독이 된다. 따라서 밖으로 쏟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주위를 잘 살펴보라.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안내는 사람보다 훨씬 마음이 단순하고 뒤끝이 없으며 건강하게 산다. 화를 참는 것은 문제가 되고 만병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화는 우리가 상대를 향하지 않고 잘 표현하는 공부를 하여야 한다.

신분의성(信忿疑誠)중의 분(忿)이 한문으로 분노할 분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한때에 어느 국어선생님이 교전에 분발할 분(奮)자를 분(忿)으로 사용하고 있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여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분노는 나쁜 것이라는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문제가 된다. 그러나 경전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우리의 분별에 잘못이 있는 것이다. 분노를 참고 쌓아두는 것이 문제이지 깨끗이 표현하는 화는 진솔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건강한 에너지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어나는 화를 분별없이 수용하여서 잘 살펴보면 이 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어두운 생각 (분별성과 주착심)이 원인임을 알게 된다. 현실경계는 나의 마음을 비추어주는 거울인 것이다. 화가 날 때 내 앞의 현실(경계)의 거울을 잘 살펴보면 내 속에 집착된 어두운 생각들을 상대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를 내 것으로 수용하여 받아들이고 소중히 수용하면 나는 깨어나서 고통의 원인이 소멸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 하게도 마음이 요란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면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쉽게 자신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계가 나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믿고서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깨어서 보면 이는 큰 착각임을 알게 된다. 현실 경계는 나를 괴롭힐 힘이 없다. 다만 나의 분별주착심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깨어나서 나의 분별만 내려놓으면 된다. 도봉 마음공부 방에서는 이를 간단한 표를 만들어서 요란함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서 이를 수용하고 깨어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 (다음 카페<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사람은 없다.>를 참고 바람)

누적되어 쌓여 있다가 터져 나오는 화는 자신과 주위를 놀라게 한다. 더욱이 이 화가 상대(경계) 때문이라는 생각을 할 때 이는 계속되는 아픔이 누적되어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화가 날 때 이를 수용하여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발견하면 나는 깨어나고 마음속에 쌓여있는 화는 흔적 없이 정리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마음공부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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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진동그라미